님이 무엇인지 제가 어케 알아요

 트위터상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유행하게 된 말이다. 사실 유행은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욕하는 중이다. 어케 그런 말을 하냐고. 

근데 나는 별로 욕을 보태고 싶은 입장은 아니고 그 말에 공감이 되는 입장이다. 과거 좀더 많은 성소수 친구들과 알고 지내던 시절에 그런 말을 몇 번을 할까 말까 하다가 못했던 대화를 몇번 한 적이 있었다. 님이 무엇인지 제가 어케 알아요. 블로그 글 주제 요청이 들어와서 쓰는데, 별로 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옛날에 이런 말좀 더 하고 살걸 하는 푸념이나 하려고.

말은 왜 하나, 글은 왜 쓰나, 전할 게 있어서 하는 것임.. 근데 나는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은 내가 받았던 질문들은 다 좀 개인에게 던져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었음. 무슨 대답이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이었음. 이를테면 질문에 '흠... 당신은 레즈비언이군요...'라고 답한다고 생각해보자. 답을 한 사람이나 질문을 한 사람이나 그걸 원한 게 아니었을 것임. 그렇다면 질문이 표면적으로 묻는 질문과 속 뜻이 다른 고맥락적 질문이라는 건데 나는 이런 피곤한 게 싫어... 꼭 이렇게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님의 요약될 수 없는 삶이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좀 더 고민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이런 부류의 답을 해야 함. 질문이... '나는 무엇일까요' 가 아니라 '내 삶을 보고 뭔가 느껴지는 게 없나요'인 것임. 

이런 질문이 세상에 필요없는 것은 아님... 듣는 입장에서도 질문하는 입장에서도 필요한 상황이 있음... 이를테면 많은 '퀴어' 들어가는 다큐 영화 소설 만화... 가 의미가 있으려면 일단 낯선 삶을 제시하고 그중에서도 전하고 싶은 면을 포착해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냥 마냥 이런 낯선 삶도 있다 하면서 늘어놓는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함... 좀... 수준이 떨어진다고도 생각하고... 소재주의로 흐르기 쉽다고 생각하고... 너무 난해해져서 결국 아무 것도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고... 하여튼 그렇다 해도 모든 기회가 최대한으로 쓰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낯선 삶을 제시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음. 그래도 이게 성공하면 감상자는 '님의 요약될 수 없는 삶이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어쩌구저쩌구'라는 감상을 갖게 됨. 사실 일반인들이 낯선 것을 만나고 남길 수 있는 감상의 최대한이 이 수준인 경우도 많고, 이게 나쁜건 아님. 이런 하나하나가 세상을 바꾸기는 함. 

근데 이게 다큐 영화 소설 만화 등으로 아무나에게 감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가는 거랑... 개인 대 개인으로 대화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거랑... 아무래도 다름... 아니, 님도 굴곡진 삶을 살았겠지만 제가 그런 삶을 모를까요? 제게 님의 삶이 무척 새롭게 다가올까요? 님이 그정도라고 생각하세요? 뭐... 그럴 수도 있음. 남에게 관심 없으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으면, 아직 경험이 별로 없어서 진짜 자기가 그정도인 줄 알았으면, 아님 진짜 굴곡진 그정도의 삶을 살았으면 그랬을 수도 있음. 근데... 진짜 굴곡진 그정도의 삶을 살기...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음... 

성소수가 자라면서 인생에 '나는 무엇일까요' 시기가 없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함. 인생에 한번은 누군가에게 하기는 해야 할 거임... 나는 무엇일까요... 물론 사회에 가장 기여하는 방법은 그런거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임. '내 삶을 보고 뭔가 느껴지는 게 없나요' 그런데 뭐 꼭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걸 개개인에게 부담지우기는 좀 그렇기도 하고... 그냥 편한 사람들한테 하는 게 안전하지... 그럼 뭐 성소수들끼리 해야 하지... 아님 성소수에 빠삭한 안성소수들이나... 근데 사람 사는 게 뭐 새로울 게 더 있겠음. 피곤하지 않겠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듣고 있으면... 

그러다 보면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고 싶어지는 것임. '님이 무엇인지 제가 어케 알아요' 그래도 '님 그정도는 아니거든요' 라고 답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음. 그래서 나는 뭐 어케 했냐... 그냥 하염없이 다 들어줬다. 님은 그러면 이런 것 아닐까요 님은 이런 걸 더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해결이 될 리 없는데 그랬음... 무시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음. 무시하고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욕이나 할 걸 그랬음. 욕할 것 까지는 없고 그냥 답답한 마음이나 아는 사람들끼리 공유할 걸 그랬음. 님이 무엇인지 제가 어케 알아요. 근데 무시하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고 그러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다행이다 언제 털릴 지 모르는 일이었잖아. 

나는 무엇일까요

님이 무엇인지 제가 어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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